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작은 마을, 인구보다 책이 더 많다는 서점이 있습니다. 오늘은 5평 책방의 존재감 - 시골 서점의 큐레이션 철학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시골 한켠에 자리한 '작은 책방'의 의미
5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그 안은 어느 대형서점보다도 깊이 있는 큐레이션과 애정으로 가득합니다. 최근 몇 년간 전국의 소도시와 시골 마을에 문을 연 ‘동네책방’들은 단순한 책 판매처를 넘어, 지역과 문화를 연결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책방의 운영자들은 대부분 출판, 인문학, 예술,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던 경험을 가진 이들입니다.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조용한 마을에 내려와 책방을 열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책을 고릅니다. 판매보다는 '공유'와 '교류'에 무게를 두는 이들의 운영 방식은, 소비 중심의 도시형 책방과는 사뭇 다릅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이런 책방 대부분이 ‘정확히 무엇을 팔 것인가’에 앞서 ‘누구와 무엇을 나눌 것인가’를 먼저 고민한다는 점입니다. 즉, 책을 중심으로 한 인간 관계의 복원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책이란 매개를 통해 동네 사람들과 외지에서 오는 여행자, 그리고 운영자 자신이 다시 연결되는 과정을 중시합니다.
한 서점 주인은 “책은 판매보다도 대화의 출발점이 될 때 가장 가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철학은 책방의 서가 배열, 책 소개 방식, 프로그램 구성에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어떤 책은 바로 펼쳐 볼 수 있게 벽면에 걸려 있고, 어떤 책은 짧은 필사와 함께 진열되어 있어 마치 운영자의 손글씨가 방문자를 반기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큐레이션의 철학: 책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시골 책방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그곳에서 다루는 책들이 단순히 최신 트렌드나 베스트셀러 위주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책방 주인의 철학과 취향, 지역과의 연관성을 기반으로 신중하게 선별된 책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큐레이션’은 단순한 추천을 넘어서는 작업입니다. 지역 주민의 관심사, 계절의 흐름, 마을의 역사와 정체성까지 반영되곤 합니다. 예를 들어, 한 강원도 마을의 책방은 계절마다 책의 주제를 바꿉니다. 여름에는 ‘산과 바다’, 겨울에는 ‘고요함과 사색’이라는 주제로 구성해 방문자에게 계절감을 책으로 전달합니다.
또 다른 책방은 마을 주민이 직접 책을 추천하고 리뷰를 적어놓는 '주민 추천 서가'를 운영합니다. 이를 통해 책을 고르는 행위 자체가 공동체 안에서의 문화적 경험이 됩니다. 운영자는 큐레이터가 아닌 조력자로서, 지역 안에 잠재된 문화적 자산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역할을 맡는 셈입니다.
이러한 서점 운영자들의 공통된 시선은 "책이 그 자체로 콘텐츠"라는 확신입니다. 책을 어떤 방식으로 소개하고, 누구와 함께 나눌 것인지에 따라 그 책의 생명력이 달라진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책방의 모든 요소—선정, 진열, 설명, 프로그램—은 그 철학에 기초하여 설계됩니다.
책방을 통한 지역과의 연결: 문화의 확장 공간
시골 서점이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닌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는, 지역과의 깊은 연결 덕분입니다. 동네 사람들을 위한 독서 모임, 계절마다 열리는 작가 초청 강연, 마을 행사와 연계한 책 전시 등은 책방이 지역 문화의 중심으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전남의 한 작은 읍내에서 운영되는 책방은 인근 초등학교와 연계하여 학생들과 함께 ‘마을 책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아이들이 마을을 관찰하고, 인터뷰하고, 직접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으로 엮는 이 프로젝트는 책방이 교육, 기록, 공동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중심 허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많은 서점이 농산물 마켓, 소규모 플리마켓, 공예 워크숍 등과 연계되어 지역 경제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단순히 책을 파는 것이 아닌, 책이라는 주제로 모이는 사람들이 지역의 생산자나 창작자들과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이 과정은 지역 내 다양한 자원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되는 ‘느슨한 네트워크’를 만들어냅니다.
이처럼 시골 서점은 그저 조용한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관계를 맺으며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사람과 책, 책과 마을, 마을과 외부를 연결하는 이 작지만 강한 플랫폼은,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중요한 문화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5평 책방’이라는 표현은 공간의 크기를 말하지만, 그 존재감은 그 이상입니다. 단순한 책 판매처를 넘어서서, 이 작은 책방들은 자신만의 큐레이션 철학을 통해 지역과 연결되고, 문화를 확산시키며, 새로운 방식으로 공동체를 잇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도시는 정보가 넘치는 곳이지만, 깊은 연결은 종종 부족합니다. 반면, 시골 책방은 적은 수의 책과 사람 속에서도 진한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그러한 작지만 뚜렷한 시도들이, 지방의 새로운 문화를 이끄는 동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